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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 / 펌

글쓴이 : 으뜸해 날짜 : 2009-09-22 (화) 23:23 조회 : 2833
대승불교(大乘佛敎)

 
목차

1. 개요

2. 대승불교의 원류

(1) 대승불교의 원류

(2) 부파불교와의 관계

(3) 불전문학


3. 보살사상

(1) 보살사상의 형성

(2) 대승의 보살

(3) 보살의 수행


4. 대승경전의 성립

(1) 대승경전의 성립

(2) 대승경전의 발달 구분

(3) 초기의 대승경전

(4) 중기이후의 대승경전


5. 대승사상의 전개

 공사상

(1) 공사상의 의미

(2) 공사상의 배경

(3) 용수의 공사상

(4) 중기 중관파

(5) 후기 중관파

 
유식

(1) 유식사상의 흥기

(2) 유식사상의 발달

(3) 팔식의 구조

(4) 식의 전변

(5) 삼성설

(6) 유식의 수행


 여래장사상

(1) 여래장 사상의 배경

(2) 여래장계 경전

(3) 여래장 사상의 연원

(4) 여래장과 아뢰야식

(5) 여래장 연기설

 
밀교

(1) 밀교의 의미

(2) 밀교의 기원

(3) 초기밀교

(4) 중기밀교

(5) 후기 밀교


천태사상

(1) 천태사상의 역사

(2) 법화경과 천태삼대부

(3) 천태의 교상판석

(4) 천태의 존재양상

(5) 천태의 실천체계


화엄사상

(1) 화엄경개설

(2) 화엄사상의 역사

(3) 화엄의 교판

(4) 법계연기

(5) 삼성동이와 연기인문육의

(6) 십현연기

(8) 성기사상

(7) 육상원융

 
정토사상

(1) 정토삼부경 개설

(2) 정토사상의 발전과 변용

(3) 정토의 교판

(4) 타력본원설

(5) 악인과 왕생

(6) 아미타불과 극락정토 


선사상

(1) 선의 기원

(2) 보리달마의 선사상 

(3) 달마이전의 중국선 - 소승선과 대승선, 염불선

(4) 능가종(楞伽宗)의 성립과 발전 

(5) 동산법문(東山法門)의 형성 

(6) 북종선(北宗禪)과 남종선(南宗禪) 

(7) 선종(禪宗)의 형성 

(8) 오가선풍(五家禪風)의 전개 

(9) 간화선과 묵조선 


한국의 선사상

(1) 한국불교의 선풍

(2) 한국의 초기선

(3) 한국의 중기선

(4) 한국의 후기선


초기대승론


1. 개요


대승(大乘)이란 마하야나(Maha-yana)의 역어(譯語)로 큰 수레라는 의미이며, 소승(小乘)은 히나야나(Hina-yana)의 역어(譯語)로 작은 수레라는 의미이다. 히나(hina)에는 󰡐버려진, 천한, 열등한󰡑이라는 의미도 있어, 히나야나란 대승교도가 부파불교를 경멸하여 천시한 호칭이다. 즉 부파불교에서는 스스로 소승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대승과 소승의 승(yana)란 교리를 말하는 것이다. 가르침을 실천함으로 미혹의 현실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으므로 수레에 비유한 것이다. 대승불교와 부파불교의 교리적 차이는 많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차이이다. 대승불교에서는 󰡐남을 구제함으로 자신도 구제된다󰡑는 자리이타원만(自利利他圓滿)의 가르침을 설한다. 이에 비해 유부나 상좌부에서는 번뇌를 끊고 자기자신의 해탈을 얻는 것이 수행의 목적이 되고 있다. 해탈을 얻어 열반에 드는 것을 추구하며, 자신이 해탈을 얻은 후에 남을 구제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지 않았다.


부파불교는 철저히 출가위주의 불교이다. 즉 출가자는 성불(成佛)을 이상으로 삼지만, 재가자는 이러한 이상에서 배제되어 단지 출가자에게 보시하고 공양하는 일차적인 의무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이에 비해 대승불교에서는 출가와 재가 모두가 성불할 수 있다고 가르치며, 이러한 가르침의 근저에는 누구에게나 붓다가 될 수 있는 소질이 갖추어져 있음을 믿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차이에서부터 점차로 교리상의 차이가 생긴 것이다. 소승에서는 육신이 멸하여 열반에 드는 것을 최후의 목표로 삼았지만, 대승에서는 영원히 열반에 들지 않는 것을 설하고 있다. 즉 문수보살이나 보현보살, 관음보살 등은 성불하지 않고 중생의 구제를 위해 열반에 들지 않는다. 이러한 교리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대승에서는 공(空)의 사상이 심화되고, 연기(緣起)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을 했다. 동시에 붓다에 의한 구제의 교리로서 악한 사람이나 약한 사람도 구제하는 타력이행(他力易行)의 교리가 나타난다. 이러한 관념은 이전에 보이지 않는 대승불교의 특색이다.


2. 대승불교의 원류


(1) 대승불교의 원류

대승불교가 어디서부터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나 대체로 세 가지 원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대승불교가 부파불교로부터 발전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중부(大衆部)가 발전하여 대승불교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대중부의 주장 가운데 일부가 대승불교의 사상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승불교가 출현한 이후에도 대중부는 존속하기 때문에 대중부가 발전하여 대승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다른 부파들의 교리도 대승불교에 도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설일체유부의 교리는 비판되면서도 가장 많이 채용되었다. 또 경량부의 교리도 대승불교에, 특히 유식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어느 한 부파로부터 발전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둘째는 불전문학(佛傳文學), 이른바 찬불승(讚佛僧)의 계통에서 발전했다는 것이다. 불전문학이 어떤 부파에서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점차 부파불교를 초월한 사상으로 발전해나갔을 것이다. 이 불전문학의 사상이 대승의 흥기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셋째는 불탑신앙이다. 불멸 후에 불골(佛骨)을 분배하여 중인도에 세워진 불탑은 점차 신자들의 신앙심을 고취시켜 불탑신앙이 성행하게 되었다. 그 후 아쇼ㅋ ㅏ왕은 각지에 불탑을 세웠는데 이로 인해 불탑신앙은 더욱 성행하였을 것이다. 불탑신앙이 성행하게 되면서 이들이 하나의 집단을 이루면서 불탑교단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불탑교단은 기존의 부파불교와는 별개로 발전하여 대승불교의 흥기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2) 부파불교와의 관계

대승불교의 원류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대중부(大衆部)에서 대중불교가 흥기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대중부의 교리가 대승불교에 가깝다는 것이다. 대중부의 교리 가운데 불타론(佛陀論), 보살론(菩薩論), 심성본정설(心性本淨說)이 그것이다. 먼저 불타론에서는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한 분의 붓다를 설하지 않고 여러 명의 붓다를 설하였으며, 또 이 붓다는 세상에 나와서 중생을 교화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유부의 불타관과 다르다. 유부에서는 오직 한 분의 붓다만이 존재하며, 이 붓다는 열반에 들어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


대중부계의 보살론에서는 일체의 보살은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모든 유정(有情)을 이롭게 하겠다고 서원했기 때문에 스스로 원해서 악취(惡趣)에 태어난다고 설하고 있다. 이는 유부에서 업에 따라서 윤회한다고 설한 것과 다른 것으로 대승불교 사상에 가깝다.


그리고 대중부에서는 심성본정(心性本淨)을 설하였는데, 이 심성본정설도 대승불교에서는 중요한 교리이다. 그러나 대중부의 심성본정의 주장은 다른 부파에서도 발견되며, 세일론 상좌부가 전하는 <아함경>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심성본정설을 대중부의 독특한 설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상좌부계의 화지부(化地部)와 법장부(法藏部)도 대승경전에 영향을 주었으며, 유부의 한 파인 비유자(譬喩者)도 대승과 공통된 주장을 하고 있다. 따라서 교리적 유사성만으로 대중부에서 대중불교가 흥기했다고 할 수 없다. 대승불교는 기존의 교리를 수용하여 독자적인 해석을 가했기 때문에 어떤 한 부파의 교리를 전적으로 수용했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대승의 기원은 교리의 기원임과 동시에 교단의 기원이기도 한데, 대중부의 교단과 대승교도 간에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3) 불전문학

불전(佛傳)문학이란 기존의 경전이나 율장과는 달리 붓다의 생애에 대해서 기술하는 것으로 위대한 붓다에 대한 찬탄을 주로 한다. 따라서 불전문학은 찬불승(讚佛僧)과 같은 계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전문학에서는 붓다가 성불한 인연을 추구하고 성불을 가능하게 한 수행[本行]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붓다가 어떠한 경로를 거쳐 성불에 도달했는지, 그 사이에 어떤 수행을 했는지 등을 고찰하면서 점차 완성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러한 불전(佛傳)은 부파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부파를 초월한 공통점이 있었다.

 

불전문학에서 공통적으로 설해지고 있는 것은 첫째로 석가보살이 연등불(燃燈佛)로부터 미래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授記)를 받은 것이다. 그 때의 보살은 바라문 청년이었는데, 이름은 선혜(善慧), 수메다, 운(雲) 등으로 이본(異本)에 따라 다르다. 이 이야기에서는 5줄기의 꽃을 어떤 여인으로부터 구입하여 연등불에게 바쳤다는 것, 진흙을 덮기 위해 자신의 머리를 풀어 그 위에 깔아 연등불을 건너게 한 것, 이 때 미래에 반드시 부처가 되겠다는 서원을 세운 것 등이 말해진다.

 

그러나 그 후 연등불로부터 수기를 받기 전의 석가보살은 어떠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로부터 3아승지겁의 옛날부터의 수행이 설해지게 되었다. 불전에서는 수기를 받은 후 보살이 6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 설해진다. 붓다가 성불하는 데에는 성문이나 연각과는 다른 수행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6바라밀이 설정된 것이다. 석가보살은 6바라밀을 수행한 후 10지(地)에 오르고, 그 수행이 완성되어 일생보처(一生補處)에 오른다.

 

이러한 불전문학의 특징적인 점들은 대승경전에 계승되고 있다. 불전문학과 대승경전은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즉 불전문학에서 문제삼고 있는 보살은 붓다의 전생(前生)으로서 이미 수기를 받아 성불이 결정되어 있는 보살이다. 이에 비해 대승불교에서 설하는 보살은 단지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킨 보살일 뿐이다. 성불이 결정되어 있지 않음을 물론이고 수기도 받지 않았으며, 자신이 세운 서원에서 후퇴할 수 있는 범부로서의 보살이다. 불전문학에서는 범부의 수행자가 스스로 보살의 자각을 일으켜 수행하는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3. 보살사상

(1) 보살사상의 형성

보살(菩薩)은 보디삿트바(bodhisattva)를 음사하여 줄인 말이다. 보디(bodhi)는 깨달음이며, 삿트바(sattva)는 유정(有情)을 가리키므로, 보살이라는 말의 뜻은 깨달음을 얻은 유정(有情) 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유정(有情)이 된다. 그러나 이후에는 󰡐붓다의 깨달음을 추구하고 일체중생을 구제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으로 설명된다.


초기 경전인 팔리의 니ㅋ ㅏ야에도 보살의 용례가 보이고 숫타니파타에도 그러한 용례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 쓰인 보살이라는 말은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한역에서는 <장아함경>과 <증일아함경>에는 보살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중아함경>과 <잡아함경>에는 보살이라는 말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초기 경전 가운데 보살이라는 말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보살이라는 관념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보살이란 말은 불전문학에서 제일 먼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전문학에서는 이미 성불한 붓다의 전생(前生)을 탐구하여 깨닫기 이전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보살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따라서 보살의 기원적 의미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유정(有情)으로서 깨달음이 확정되어 있는 유정(有情)󰡑이다.


대체로 불전문학의 연등불수기(燃燈佛授記) 사상에서 보살의 관념이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연등수기는 다음과 같다. 먼 과거세에 바라문 청년이었던 붓다가 연등불을 보고 존경심이 일어나 다섯 송이의 꽃을 공양하고 머리ㅋ ㅏ락을 진흙 위에 펼치면서 반드시 붓다가 되리라는 서원을 세웠다. 그때 연등불은 미래에 반드시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라는 붓다가 될 것이라고 수기했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석가보살은 이미 성불이 결정된 보살로서 오직 단 한명뿐이다. 이러한 석가보살의 이념은 부파불교에 그대로 수용되어, 보살은 붓다의 성불 이전 단계를 지칭하는 이름이 되었다.


불전문학에 등장하는 석가보살의 수행을 통하여 조직된 보살도(菩薩道)는 붓다가 되고자 하는 서원을 세우는 것, 모든 사람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대자비심을 가지고 육바라밀(六波羅蜜), 방편(方便), 사무량심(四無量心) 등을 실천하는 것, 공덕을 쌓기 위하여 모든 부처님을 섬기고 공양하는 것 등의 단계를 거쳐 실천의 완성에 도달하는 것이다.


(2) 대승의 보살

불전문학에서 제시된 보살이라는 관념은 점차 그 의미가 확대되고 보편화되었다. 따라서 붓다의 전신(前身)뿐만 아니라 붓다가 되기 전의 모든 중생을 보살로 간주하게 되었다. 즉 수행을 완성한 사람뿐만 아니라 붓다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든 중생을 보살이라고 하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관념들은 점차 경전에도 나타나게 된다.


대승경전에서는 미륵(彌勒), 관음(觀音), 보현(普賢), 문수(文殊)처럼 수행이 완성된 대보살(大菩薩)과 대승의 가르침을 믿고 지니며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범부보살(凡夫菩薩)이 등장한다. 이처럼 대보살이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않고 세상에 나와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과 재가와 출가를 불문하고 남녀, 빈부, 귀천을 불문하고 붓다의 깨달음을 추구하여 보살의 행을 닦는 사람은 누구나 보살이 될 수 있다는 사상은 기존의 보살관념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누구나 보살이 될 수 있다는 범부보살의 사상은 기존의 부파 교단과는 별도의 즉 불탑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불탑교단의 사람들에 의해 전개된 것으로 여겨진다. 불탑 신앙자들은 그들의 수행의 이상형을 석가보살로 삼았으며, 그 석가보살의 수행을 통해 자신들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붓다의 전신(前身)인 석가보살의 수행은 단순한 수행이 아니라 깨달음을 위한 인행(因行)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대승경전으로 여겨지는 <아촉불국경>과 <대아미타경>에는 각각 미륵과 관음이라는 대보살이 등장한다. 미륵과 관음은 현재에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석가보살과 다르며, 수행의 완성이라는 점에서 범부보살과도 다르다. 이는 기존 부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보살이다. 이러한 대보살은 실제로 존재했던 보살이기 보다는 이념적인 존재들로서 석가보살로부터 비약된 보살들이다. 즉 붓다에 대한 신앙이 발전함에 따라 그 필요에 따라 여러 보살들이 설정된 것이다.


불전문학에서의 보살은 석가보살 단 한 명만이 제시되어 있으며, 또한 붓다의 전신(前身)이므로 반드시 과거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대승의 보살은 붓다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자는 누구나 보살이므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으며, 보살이 존재하는 시간도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가능하다. 대보살이나 범부보살은 과거에도 존재하였고 현재에도 존재한다. 대승보살의 가장 큰 특징은 불전문학의 보살이 업(業)에 의해서 태어나는데 반해 대승보살은 자신의 서원에 의해 태어난다는 것이다. 즉 수행이 완성되면 윤회의 세계에서 벗어나는데 이들 대보살들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에 의해 윤회의 세계에 나와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3) 보살의 수행

불전문학의 보살은 성불이 결정된 보살로서 과거의 선업(善業)에 의해 태어나지만 대승의 보살은 서원에 의해 태어나게 된다. 따라서 보살의 서원(願)은 이기적인 욕망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이타적인 성격이 강하다. 보살의 서원에는 각각의 보살이 일으키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원[別願, 本願]과 모든 보살이 갖추고 있는 보편적인 원[總願]이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각각의 개인이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과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다. 중생의 제도는 발심(發心)할 때 세운 서원의 실현이며 자비행은 깨달음을 중생에게 돌리는 실천이기 때문에 중생을 구제하는 이타행(利他行)과 깨달음을 성취하는 자리행(自利行)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 것이다.


보살은 보리심을 일으켜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의 갑옷으로 무장한 후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음으로써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육바라밀은 붓다의 전신(前身)인 석가보살이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무수한 생애동안 실천한 것이다.


바라밀(波羅蜜)은 파라미타(paramita)의 음사로서 󰡐피안(彼岸)에 이른 상태󰡑 혹은 󰡐최상의 상태󰡑 즉 완성을 의미하는데 구마라집은 도피안(到彼岸)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완성이라고 하더라도 완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완성이며, 이상을 향해 영원히 나아가는 실천적인 지혜이다. 바라밀은 무차별, 공(空)에 입각한 실천이기 때문에 도달이나 완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따라서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닦아가는 것이 바라밀의 참뜻이다. 이런 바라밀에는 여섯 가지가 있는데 보시(布施)바라밀, 지계(持戒)바라밀, 인욕(忍辱)바라밀, 정진(精進)바라밀, 선정(禪定)바라밀, 반야(般若)바라밀이다. 이 여섯 가지 바라밀은 논리적인 체계와는 상관없이 보살의 실천덕목을 말하는 것이다.


보시(布施, dana)란 베푸는 것이다. 베푸는 것에는 물질적으로 베푸는 재시(財施)와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법시(法施), 두려움과 근심을 함께 하고 도와주는 무외시(無畏施)의 세 가지가 있다. 보시할 때에는 주는 자, 받는 자, 주는 물건이 모두 청정한 것[三輪淸淨]이 진정한 보시이다. 즉 보시를 행하면서도 보시라는 선행에 집착하지 않고 공덕의 대가도 바라지 않는 무주상(無住相)의 보시가 보시바라밀이다.


지계(持戒, sila)란 󰡐계를 지킨다󰡑는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계(戒)에는 재가신자들이 지켜야 할 오계(五戒)와 출가한 비구와 비구니가 갖추어야 할 250계와 350계가 있지만 대승의 보살계에는 10가지가 있다. 이 열 가지는 십선(十善)이라고 하는데 이는 불살생(不殺生), 부도(不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악구(不惡口), 불양설(不兩舌), 불기어(不綺語), 무탐(無貪), 무진(無瞋), 정견(正見) 등의 착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승의 지계(持戒)는 이전의 소승처럼 수동적이고 타율적이지 않으며 능동적이고 자율적 정신을 강조한다. 계(戒를 지키는데 있어서 그 본래의 정신을 망각하게 되는 상황을 경계하는 것이다. 계(戒) 역시 공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지키며, 타인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 지계바라밀의 본질이다.


인욕(忍辱, ksanti)이란 참고 용서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고통이며 그러한 세계에서 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화내지 않고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사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미움은 미움으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큰 미움을 부르기 때문에 참고 용서하는 것으로 극복되는 것이다.


정진(精進, virya)이란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의 실천이며 불퇴전(不退轉)의 노력이다. 중생의 정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보살의 정진은 이타적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생과 보살의 정진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얻는데 있다.


선정(禪定, dhyana)의 정(定)은 삼매(三昧)란 뜻으로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사색하는 것󰡑이라고 풀이된다. 선정은 붓다가 성도(成道)하실 때부터 행하신 것으로 근본불교에서부터 강조되고 있다. 선정을 통해 모든 존재가 무자성(無自性), 공(空)임을 직관하여 그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반야(般若, prajna)란 󰡐수승한 지혜󰡑라는 뜻이다. 여기서 지혜는 사유분별의 망상을 떠난 지혜로서 집착이 없는 지혜이며, 공(空)한 지혜이다. 반야바라밀이란 지혜의 완성이라는 의미이다. 반야바라밀은 앞의 다섯 가지 바라밀 가운데 가장 으뜸인 것으로 주로 <반야경>에서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바라밀의 수행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오로지 다른 이의 이익을 위해 전력하는 것이며, 성불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끊임없는 수행이기 때문에 이를 실천하는 데에는 대단한 결의가 필요하다. 보살의 이러한 결의를 갑옷을 입고 싸움터에 나가는 전사에 비유하여 󰡐큰 서원(弘誓)의 갑옷(大鎧)을 입는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보살은 무량무수(無量無數)의 중생을 열반으로 인도하면서도 인도된 사람도 존재하지 않으며, 인도하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4. 대승경전의 성립

(1) 대승경전의 성립

대승불교는 원래 불탑을 중심으로 모여서 불탑 공양을 통해 붓다를 찬탄하고 숭배하는 재가 신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새로운 운동이다. 이 운동은 이전의 여러 부파들이 승원을 중심으로 지극히 난해한 법(法) 중심의 불교를 발달시키는 것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들은 붓다의 절대성과 자비성이 무한하다고 강조하였는데 이는 불멸(佛滅) 후에 나타난 붓다 신격화의 결과이다. 즉 불전문학과 본생담 등을 통해 범부와 다른 붓다에 대한 고찰을 발달시켰다. 그 결과로 붓다는 과거에 무한의 수행을 한 과보(果報)로 성불(成佛)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고 하며, 인행(因行)으로서 이타행(利他行)을 주로 하는 육바라밀(六波羅蜜)의 수행을 설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거세 붓다의 체험을 일반화해서 자기 자신의 것으로 삼고자 결심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새로운 운동의 출발점이었다.

 

출가 수행자들은 붓다와 자신들과의 거리감으로 인해 스스로 아라한에 머무르고자 했음에 대해서, 중생의 성불이야말로 붓다의 본래의 서원[本願]이라고 주장하여 붓다와 똑같은 깨달음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을 보살이라 부르게 된다. 많은 중생이 성불하는 길을 가르치기 때문에 이 새로운 운동은 대승(大乘)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이 운동의 지도자는 법사(法師)라고 불린다. 법사의 기원은 어쩌면 출가 수행자 중에서 재가 신자를 위해 붓다의 생애나 가르침을 설하는 전문가였는지도 모르지만, 기록을 통해서는 그 기원을 알 수 없다. 이들은 재가 신자에서의 지도자이든가 혹은 출가자이더라도 정식으로 구족계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대승 경전이 성립되기 시작하면서 대승불교 자체에 여러 가지 새로운 현상이 발생한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대승 경전에 대해 공양하고 숭배하고자 하는 요구와 법사를 존중하고자 하는 요망이다. 결국 경전이 불탑을 대신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되었으며 대승경전이라고 하는 법(法)의 절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새로운 가르침을 크게 유포시키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현상은 성불도(成佛道)로서의 보살도(菩薩)가 정비되고 체계화된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처음에 비판하였던 부파의 아비달마 교학을 다시 도입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재가보살 대신 출가 보살을 이상상으로 여기게 된다.

 

대승불교가 점차 이론화되고 체계화되어감에 따라 결국 출가주의화와 아비달마화를 초래하여 이전의 불교가 걸었던 길을 답습하게 된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밀교가 일어나고, 그들의 주장을 담은 밀교 경전이 제작된다. 밀교 경전도 역시 불설(佛說)임을 표방하지만 그것을 설하는 주체가 대승 경전에서처럼 붓다가 아니라 절대적 존재로서의 법신(法身)이다.

 

대승불교의 역사상 실재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혀져야 할 과제가 많지만, 대승경전의 존재를 통해서 대승불교의 실재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대승불교의 형성과 대승경전의 성립이 그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대승불교가 흥기하기 이전에 이미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이 존재했지만 대승불교에서는 이전의 사상들에 대해 비판하고 새롭게 해석하면서 새로운 경전들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2) 대승경전의 발달 구분

대승경전의 역사는 보통 3기로 나누어 말한다. 제1기인 초기는 대승의 형성에서부터 용수(龍樹)의 시대까지이고, 제2기인 중기는 용수 이후에서 무착(無着)과 세친(世親)의 시대까지이고, 제3기인 후기는 세친 이후의 후대이다. 제1기에는 경전의 제작이 성행하였으며, 제2기에서는 조금 덜하였고, 제3기에서는 밀교를 제외하고 극히 드물었다. 제1기는 대체로 기원 전후로부터 3세기 전반까지로, 북인도에서는 쿠샤나 왕조가 번창하던 시대이고 남인도에서는 인드라 왕조가 지배하던 시기에 해당한다. 제2기는 세친의 연대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굽타 왕조가 흥성하던 시기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초기의 경전은 대승불교의 교리를 최초로 저술한 인물로 지목되는 용수의 학설에 영향을 주거나 또는 인용되고 있는 경전류이다. 제2기의 분류기준은 경전의 한역 연대이다. 한역 경전에 대해서는 역자와 연대가 비교적 정확하기 때문에 이 연대에 해당하는 경전이 성립한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대승경전이 최초로 한역된 것은 후한의 지루가참에 의한 것인데 이로부터 대승경전이 최초로 형성된 시기를 서기 1세기 경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초기 대승경전이 발전하기 이전에 <반야경>이 성립되었고, <반야경>의 공(空)사상을 중심으로 대승 경전들이 제작되었다. 동시에 여러 부처를 인정하는 다불사상(多佛思想)이 성립되고 이러한 신앙도 발달하였는데, 그 중에서 아미타불의 신앙이 보편화되어 이후에 정토교(淨土敎)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화엄경>이 발전하고 또한 <법화경>을 신앙하는 운동이 급속하게 퍼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교리의 조직 및 체계화에 이루어지는데 이로 인해 부파불교의 교리들이 대승사상에 수용되게 된다. 즉 부파불교의 교리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진 것이다.

 

중기 이후의 대승경전은 대체로 여래장(如來藏)사상과 유식(唯識)사상에 관련된 것이다. 여래장계 경전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중생에게 여래장(如來藏) 즉 불성(佛性)이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유식계의 근본경전은 <해심밀경>인데 이는 보리유지에 의해 중국에 전해졌으나, 부분적으로는 구나발타라에 의해 번역되어 있으므로 대체로 4세기 말까지는 성립되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는 경전과 논전과의 구별이 어렵다. 대승사상이 점차 체계화되고 발달됨에 따라 경전에서도 정교한 사상을 설하였으며, 논전을 기초로 하여 개작된 것도 있다.

 

대승 경전의 제작은 후대에까지 계속되었지만 그 수는 갑자기 줄어들게 된다. 대신 밀교 경전이 그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650년을 전후로 <대일경>이 성립되고, <금강정경>의 성립으로 그 교리가 확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3) 초기의 대승경전

대승불교를 확립한 경전으로 <반야경(般若經)>을 꼽을 수 있다. <반야경>은 최초로 성립된 경전으로 추정될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각종의 <반야경>이 작성되었으며 대승 경전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반야경>은 반야바라밀을 설하는 경전류의 약칭이다. 반야바라밀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의 여섯 바라밀 가운데 하나이지만, <반야경>은 특히 반야바라밀을 중요시하여 다른 바라밀들은 모두 이 가운데 포섭되며, 이를 기초로 하여 성립된다는 입장을 취한다.

 

<반야경>은 그 속에 포함한 송(頌)의 수로 구분하는데 <팔천송반야>에서 <이만오천송반야>로 확대되고 다시 <이만오천송반야>에서 <십만송반야>로 확대된다. 그 후 <이만오천송>와 <팔천송> 사이에 <만오천송반야>와 <일만송반야>가 생겼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 <팔천송반야>에서 <이만오천송반야>로의 발전이 초기 대승경전에 해당된다.

 

<팔천송계 반야경>은 2세기 후반에, <이만오천송계 반야경>은 3세기 후반에 여러 차례 한역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유포된 것은 구마라집(鳩滅什)의 번역인 <마하반야바라밀경>인데, 분량의 많고 적음에 따라 <대품(大品)반야경>과 <소품(小品)반야경>으로 불린다. 가장 많은 분량의 반야경이 하나의 총서로 편집된 것은, 현장이 660년부터 663년에 걸쳐 한역한 <대반야바라밀다경>이다. <대반야경>은 600권으로 이루어졌는데, 전체 구성은 16회(會)로 나누어진다. <대반야경>을 기준으로 각종 <반야경>의 산스크리트어 원전과 한역 가운데 이역본을 살펴보면 거의 모든 종류의 <반야경>이 이 안에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 <반야심경(般若心經)>과 한역만이 현존하는 <인왕(仁王)반야경>이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타방정토(他方淨土)사상이 발달하였는데, 가장 유력한 정토사상으로는 미륵보살의 도솔천 정토와 아촉불의 동방 묘희국 정토와 아미타불의 서방 극락세계 정토이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성립된 정토사상은 미륵보살의 도솔천 신앙이다. 도솔천 신앙을 설한 경전으로는 <중아함경>의 설본경(說本經),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 <미륵대성불경(彌勒大成佛經)>, <관미륵보살상생(觀彌勒菩薩上生)도설천경>이 있다. 아촉불의 정토신앙을 주제로 한 경전에는 <아촉불국경>, <대보적경(大寶積經)>의 제6 부동여래회(不動如來會)가 있다. 아촉불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경전은 각종의 <반야경>, <유마경>, <비화경(悲華經)>, <화수경(華手經)>, <수능엄삼매경>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반야경>은 아촉불 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아미타불 신앙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다.

 

아미타불과 극락정토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경전은 많지만 직접적으로 설하고 있는 것은 세 경전이 있다. 정토는 극락정토에만 한정되지 않지만 극락정토가 가장 유력하므로 정토의 대표로 간주된다. 일반적으로 아미타불 신앙을 정토교(淨土敎)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신앙을 담은 경전을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이라고 한다. 정토삼부경은 강승개 역의 <무량수경(無量壽經)>, 구마라집 역의 <아미타경(阿彌陀經)>, 강량야사 역의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이다.

 

<무량수경>의 산스크리트어 원전은 네팔에서 전승된 것이며, 한역에는 번역된 시대에 따라 후한역, 오역, 위역, 당역, 송역이 있다. 후한(後漢)역은 지루가참 역의 <무량청정평등각경(無量淸淨平等覺經)>이며, 오(吳)역은 지겸 역의 <아미타삼야삼불살루불단과도인도경(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이며, 위(魏)역은 강승개의 <무량수경>이며, 당(唐)역은 보리유지 역의 <대보적경> 제5회 무량수여래회이며, 송(宋)역은 법현 역의 <대승부량수장엄경>이다. 이들 번역본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와 변화가 나타나 있다. 특히 가장 오래된 후한역과 오역은 다른 본과 차이가 많다. <아미타경>은 매우 짧은 경전으로 내용이 비교적 간단하다. <관무량수경>은 앞의 두 경전보다 발달된 사상을 담고 있지만 관불(觀佛)을 설하는 경전 가운데 하나로 아미타불과 극락정토의 장엄함을 마음으로 관하는 실천방법을 정리하고 있다.

 

<화엄경<華嚴經)>은 대승불교의 근본인 보살행을 조직적으로 설한 경전이다. 이 경은 한역으로 60권 또는 80권의 분량에 이르는 방대한 경전이지만 전체가 한꺼번에 작성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체제 안에 편집된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불타발타라에 의해 60권본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 한역되었으며, 80권본 <대방광불화엄경>은 실차난타에 의해 한역되었다. 한역은 이외에 일부분의 이역본(異譯本)이 20여부 이상에 이른다. <육십화엄>은 8회 34품, <팔십화엄>은 9회 39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엄(華嚴)은 붓다의 세계를 꽃으로 장엄한다는 것이다. 이 경은 예로부터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직후 그 내관(內觀)의 세계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석가모니불은 마가다국에서 깨달음을 얻었을 때 해인삼매(海印三昧)의 선정에 들었다. 그리고 몸에서 빛을 발하면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라는 광대한 우주적인 붓다의 모습을 드러냈다. 비로자나불로부터 빛이 방사되자 시방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밝게 드러나고 그곳에 사는 무수한 보살과 신 등은 연화장(蓮花藏)세계의 장엄함을 볼 수 있게 된다. <화엄경>에서의 설법의 주체는 비로자나불이 아니라 비로자나불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보살, 신, 천자, 천왕 등이다. 그들은 붓다의 위신력으로 차례로 등장하여 비로자나불의 세계를 찬탄하며 붓다를 대신하여 설법하고 있다. 설법의 주체로 다양한 보살이 등장하지만 그 가운데 대표적인 역할을 하는 보살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다. 문수보살은 <반야경>의 공사상과 관련된 보살로서 이 보살의 등장은 <화엄경>이 일반적인 대승경전의 사상과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보현보살은 무한한 세계에서의 보살행의 실천자를 구체적으로 상징하는 성격을 갖는다.

 

<법화경(法華經)>은 중국, 한국 등지에서 지명도가 높은 경전이다. <법화경>은 붓다에 대한 숭배를 강조하고 있으며, 대승불교의 여러 가지 요소들이 표현되어 있다. <법화경>의 산스크리트어 원전은 여러 가지로 발견된 지방에 따라 네팔계, 까쉬미르계, 중앙아시아계로 구분된다. 한역으로는 축법호 역의 <정법화경(正法華經)>, 구마라집 역의 <묘법연화경(妙法蓮花經)>, 사나굴다 역의 <첨품(添品)묘법연화경>이 있다. 이 가운데 구마라집의 <묘법연화경>이 옛부터 명역이라 하여 널리 독송되었다. <법화경>은 종종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며 이에 귀의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묘법연화경>의 묘법(Saddharma)은 정법(正法)으로도 번역되는데 이는 붓다가 설명한 최고의 진리를 말한다. 연화는 청정한 것의 비유로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실천자의 인격을 나타낸다. <법화경>에서는 추상적인 이론보다는 비유담, 불보살의 전세 이야기가 풍부하게 나온다. 또한 붓다에 대한 신앙을 <법화경> 그 자체에 대한 신앙으로 생각하여 이를 신앙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4) 중기이후의 대승경전

 대승불교운동이 전개되고 다수의 경전들의 유포됨에 따라 이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확립해야 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다. 신앙적인 관심에서 출발하였지만 그 이론의 전개를 명확히 해야만 이전의 부파불교 논사들과 대항해 대승불교의 우수성을 선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승불교운동은 주로 재가신자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므로 많은 경전의 작자가 누구인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용수(龍樹)는 대승사상을 정립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이후의 대승사상의 전개는 그의 이론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지게 된다. 용수 이후에도 많은 경전들이 작성되었는데 주류는 여래장계 경전과 유식계의 경전이다. 초기 대승경전이 주로 종교문학적임에 반해서 중기 이후의 대승경전은 교의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 따라서 중기 이후의 대승경전은 논(論)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또한 논(論)에 준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여래장 계통의 경전에서는 모든 중생에게 여래장(如來藏) 즉 불성(佛性)이 있다는 것을 설한다. 여래장과 불성은 실질적으로는 거의 같은 개념이지만 불성은 주로 <열반경>에서 사용되고 있다. 여래장계 경전으로는 불타발타라가 한역한 <대방등여래장경(大方等如來藏經)>을 선두로 하여 <부증불감경(不增不減經)>, <앙굴마라경(央掘滅經)>, <대법고경(大法鼓經)>, <승만경>, <열반경>, <능가경>, <무상의경(無上依經)이 있다. 여래장은 여래의 태아, 모태라는 의미로 이 말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여래장경>이다. 중생이 여래의 태아로서 여래 안에 포용되어 있는 상태 또는 중생이 자신 안에 여래가 될 태아 혹은 여래의 소질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래장과 동일한 의미로 불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폭넓은 이론을 발전시킨 경전은 <열반경>이다. 한역의 전체 역본으로는 담무참의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이 있다. 처음 북중국에 번역되었을 때는 40권본이 있었으나 남중국에서는 부분역인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과 대조하여 읽기 편하게 36권본으로 만들었다. 원시적인 형태의 <열반경>에서는 주로 붓다의 임종 전후의 사적을 기술하였지만 대승의 <열반경>에서는 붓다의 임종을 소재로 하면서도 여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즉 80세에 죽음을 맞이한 붓다보다는 붓다의 본질인 상주불멸의 법신(法身)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법신은 중생에게 있어서도 동일한 본질이며, 중생의 성불을 가능하게 하는 불성으로 작용한다.

 

유식계의 경전으로는 <해심밀경(解深密經)>과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이 선구적인 문헌이며, 이는 대체로 5세기 경에 작성되었을 것이다. 유식계 경전은 무착과 세친에 의해 대성된 유가행파(瑜伽行派)가 발달시킨 문헌이다. 가장 널리 읽힌 것은 현장 역의 <유가사지론>으로 이는 한역으로 100권에 이르는 방대한 문헌이다. 전체는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졌으며 처음의 두 부분이 중심이다. <해심밀경>은 붓다의 깊고 깊은 가르침을 해명한 경이라는 의미로 많이 읽히는 것은 현장 역이다. 이역으로는 보리유지역의 <심밀해탈경(心密解脫經)>이 있으며 이밖에도 부분적인 이역이 있다. <해심밀경>과 같은 시기에 <대승아비달마경>이 있었는데 이 경전은 이론이 정연하고 조직화되어 있어 앞의 경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후에 유가행파가 발전해감에 따라 점차 많은 문헌들이 작성되게 되었다.

 

5. 대승사상의 전개

 대승불교운동이 전개되고 수많은 경전이 생겨나자, 이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확립할 필요가 생겼다. 이에 따라 대승사상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한 사람은 서력 기원후 2~ 3세기 무렵에 출현한 용수(龍樹, Nagarjuna,)이다. 용수는 남인도 출신 사람으로 불교의 여러 사상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여러 사상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의 저서들에서는 주로 <반야경>의 공(空)사상을 논리적으로 밝히고 있으며, 공(空)사상에 입각해서 여러 견해들을 논파하고 있다. 용수는 불교의 근본 진리를 연기(緣起)로 보고, <중론(中論)>에서 연기를 생멸(生滅), 거래(去來), 일이(一異), 단상(斷常)의 차별적인 대립을 넘어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 경험되는 모든 것은 다른 것과의 상호관련 속에서만 존재할 뿐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따라서 일체는 공(空)하다고 설하고 있다. 용수는 연기(緣起), 무자성(無自性), 공(空)의 이론을 확립하여 대승불교의 기반을 다졌다.

 

용수에 의해 이론적 기반을 다진 대승불교는 다양한 관점에 따라 새로운 경전이 생겨나면서 발달된 교리체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들 새로운 경전은 공사상을 기반으로 하면서, 미혹과 깨달음의 주체로서 마음의 본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즉 마음은 깨달음의 세계를 낳는 원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혹의 세계를 낳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 마음은 보리(菩提)의 바탕인 동시에 윤회의 주체이기도 한 것이다. 전자는 마음이 바로 부처라고 하는 이상적 측면에서 고찰한 여래장(如來藏)설이고, 후자는 마음의 현실적 기능의 분석에서 출발하는 유식(唯識)설이다.

 

유식사상은 일체의 분별망상이 비롯되는 인간의 의식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의 전환을 통해 진여(眞如)와 열반의 성취를 목적으로 하는 이론으로 3 ~ 4세기 무렵 출현한 무착(無着, Asanga)과 세친(世親, Vasubandhu)에 의해 완성되었다. 나아가 여래장사상과 유식사상을 동일시하여 양자간의 융합을 모색하려는 경전과 논서도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이론이 점차 체계화되고 정비되어 감에 따라 이전의 아비달마불교처럼 대단히 번쇄하고 어려워 이해하기 힘들게 되었다. 자연히 초기 대승불교의 순수성을 상실하게 되고 후기에는 이전의 불교와는 성격이 다른 밀교(密敎)가 출현하게 된다. 밀교에서는 붓다의 깨달음을 다라니(陀羅尼)나 진언(眞言), 만다라(曼多羅) 등의 상징으로 나타내며, 의례를 중심으로 한 불교이다. 그러나 이것은 점차 힌두교의 의례와 유사하게 되어 그것에 동화되기에 이르렀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슬람교도들이 인도에 침입하여 불교사원을 파괴함으로써 불교는 13세기 무렵 인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한편 불교는 서력 기원전후 동쪽으로 진출해서 중국에 전해지기 시작하였는데 그 후 수(隨), 당(唐)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경론들이 번역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인도의 불교는 오랜 시간동안 넓은 지역에 걸쳐 전개된 것이었으므로 어떤 일정한 체계를 갖춘 것이 아니었다. 즉 경론 간에 서로 다른 해석과 주장이 있게 되고 경론이 중국에 들어올 때 시대별로 들어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중국의 불교인들은 번역된 온갖 경론들에 대해 체계성을 부여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각기 나름대로 불교의 일체 경론을 분류하고 해석하였는데, 이를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고 한다.

 

이러한 교상판석에 따라 마지막으로 설해진 것 또는 가장 뜻이 깊은 것으로 간주된 경론들을 중심으로 하여 마침내 종파들이 성립하게 되었다. 불교의 종파는 이미 동진시대나 남북조시대에 여러 경론이 번역되고 그것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당나라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수많은 종파가 성립하게 된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13종파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는 물론이거니와 중국 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은, <법화경>의 일승(一乘)을 대승불교의 근본으로 간주하는 천태종(天台宗), <화엄경>의 중중무진(重重無盡)의 법계(法界)를 깨달음의 본질이라고 하는 화엄종(華嚴宗), 정토계 경전에서 설하고 있는 아미타불의 본원력(本願力)에 의지하여 정토의 실현을 추구하는 정토종(淨土宗), 그리고 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이전의 여러 종파들과는 달리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을 표방하는 선종(禪宗) 등이 있다.

 

이제 인도의 대승불교 사상인 공(空)사상, 유식(唯識)사상, 여래장(如來藏)사상, 밀교(密敎)사상을 살펴보고, 이어서 중국불교의 대표적인 종파인 천태종(天台宗), 화엄(華嚴宗), 정토(淨土宗), 선宗(禪宗) 등의 사상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공사상

(1) 공사상의 의미

<반야경>의 공(空)사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사람이 용수이며, 이 용수의 대표적인 저술인 <중론(中論, Madhyamakakarikah)>을 중심으로 한 사상을 중관(中觀) 사상이라 하며, 또 그 중관 사상의 흐름을 이어받는 불교 논사들을 중관파(中觀派)라 부른다. 용수는 <중론> 외에도 다수의 저작을 남기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중론>으로 이후 많은 주석서가 씌어진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용수 당시의 제자로 제바(提婆)와 라후라발타다(羅侯羅跋陀羅)가 있다. 제바는 용수의 사상을 선양하면서 외도(外道)의 사상을 맹렬하게 비판하여 논적(論敵)에게 암살되었다고 전해진다. 제바는 <사백론(四百論)>, <백론(百論)>, <백자론(百字論)> 등을 남기고 있다. 라후라발타라는 용수와 제바와 제자로 <중론>에 대한 주석을 주었다고 전해지지만 현존하지 않고, <반야바라밀다찬(般若波羅蜜多讚)>, <법화찬(法華讚)> 등이 전해진다. 제바와 라후라발타라는 용수와 함께 초기 중관파로 분류되며, 용수의 사상을 선양하고 중관 사상의 기틀을 다졌다.

 

초기 중관파에 이어서 용수의 사상을 발전시키고 중관 사상을 완성시키는데 기여하는 사상가들이 나타나는데 이들이 중기 중관파의 논사들이다. 중기 중관파들이 활약했던 시기는 대체로 5 ~ 7세기로 이들은 모두 용수의 <중론(中論)>에 대한 주석서를 남기고 있다. <중론>의 주석가는 10명이 있다고 전해지지만 후기 중관파의 문헌과 티벳의 전승에서는 8명의 주석가가 거론되고 있다. 8명의 주석가 가운데 중관 사상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불호(佛護, Buddhapalita)이다. 불호는 <중론>의 주석서로 티벳역으로 현존하는 <근본중론주(根本中論註)>를 남겼지만 그의 주석태도는 후에 청변으로부터 비판받는다. 청변은 <반야등론(般若燈論)>에서 불호의 주석태도를 비판하고 논리식에 따른 주석태도를 취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월칭에 의해서 비판된다. 이러한 비판으로 후에 티벳에서는 중관파를 청변 계통의 자립논증파(自立論證派)와 불호, 월칭 계통의 귀류논증파(歸謬論證派)로 분류한다.

이 중기 중관파의 뒤를 이어 나타나는 중관파가 후기 중관파로 분류되는 논사들로서, 그 가운데 자립논증파 출신인 적호(寂護, Santaraksita)와 연화계(蓮華戒, Kamalasila)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후기 중관파가 활약한 시기는 대체로 8 ~ 11세기로 이들은 중관사상과 유가행파의 사상을 종합하여 후에 유가행중관파(瑜伽行中觀派)라고 불리었다.


(2) 공사상의 배경

초기 대승불교의 중심적인 철학인 공사상은 당시 성행하고 있던 부파불교의 아비달마적인 실재론에 반발로서 형성되었다. <발지론(發智論)>은 B.C 2세기 내지 1세기에는 성립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여러 부파 중에서 가장 강력했던 설일체유부의 실재론의 체계가 <팔천송> 이전에 확립되어 북인도에 널리 유포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비달마 철학이 실재라고 고집하는 제법을 부정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으며, 또한 사물이라는 것은 무지한 범부나 일반인이 집착하고 있는 것과 같은 형태로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하고, 5온을 필두로 하는 제법은 마치 환인(幻人)처럼 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본래 속박되지 않으며 해방되지도 않는 것이 제법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진여, 眞如)이라고 한다. 모든 것은 유정으로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 꿈이나 환과 같다.

 

최초기에 있어서는 보살은 어떠한 것도 인식해서는 안되며 집착하고 마음을 고정시켜 주착해서는 안된다는 보살의 마음가짐과 어떠한 것도 본체를 갖지 않으며,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무런 매개없이 동일시 되고 있었다.


(3) 용수의 공사상

용수는 중관파(中觀派)의 개조이며 팔종(八宗)의 조사로도 추앙받고 있는데, 이는 용수 이후의 대승사상은 그가 체계화한 공사상을 바탕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용수의 전기에 관한 자료는 구마라집 역의 <용수보살전(龍樹菩薩傳)>, 길가야와 담요 공역의 <부법장인연전(付法藏因緣傳)> 5권, 현장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10권 등이 있다. <용수보살전>에 의하면 용수는 남인도 출신의 바라문이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어린 나이에 당시의 학문에 거의 통달하여 명성이 드높았다고 한다. 청년시절에 은신술을 익힌 그는 왕궁에 침입해 쾌락에 탐닉했으나, 애욕은 모든 재앙의 근원임을 깨달아 불교에 귀의해 출가했다. 그는 입산하여 출가수계를 받았다. 3개월간의 정진으로 소승의 경전에 통달한 후 다시 경전을 찾아 설산(雪山)을 헤맨 끝에 산중의 어느 탑 앞에서 늙은 비구로부터 대승경전을 전수받았다. 여기서 많은 진리를 깨달았지만 부족하다고 여긴 용수는 다시 경전을 찾아 다녔다. 그러던 끝에 대룡(大龍)보살의 도움으로 바닷속 궁전에서 심오한 경전을 전수받았다. 이를 깊이 연구하여 용수는 갖가지 심의(深義)에 통달하고 무생(無生)의 이인(二忍)을 얻었다고 한다.

 

이처럼 <용수보살전>은 전설로서 객관적인 사실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용수가 남인도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활동하였으며 이 지역의 왕조와 교섭을 가졌음을 사실이다. 이는 용수가 어느 왕에게 보낸 편지의 모음인 <용수보살권계왕송(龍樹菩薩勸誡王頌)>에 의해 알 수 있다. 그러나 용수가 활동한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대개 2 ~ 3세기 또는 150 ~ 250년 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용수의 저작은 많지만 후세 여러 저작이 그의 이름으로 가탁되고 있어서 진위가 명확하지 않은 문헌들이 적지 않다. 그의 저작으로 확실시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공과 연기에 관한 것으로는 <중론송(中論頌)>, <공칠십론(空七十論)>, <십이문론(十二門論)>, <육십송여리론(六十頌如理論)>, <인연심론송석(因緣心論頌釋)>, <대승파유론(大乘破有論)>이 있다. 공사상에 입각해서 외도(外道)인 니야야학파의 학설을 비판한 것으로는 <회쟁론(廻諍論)>, <광파론(廣破論)>이 있다. 그 외의 저작으로는 <대지도론(大智度論)>,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 <대승이십송론(大乘二十頌論)>, <보행왕정론(寶行王正論)>, <용수보살권계왕송(龍樹菩薩勸誡王頌)>, <보리자량론송(菩提資糧論頌)>, <사종찬가(四種讚歌)>이 있다. 이 가운데 <십이문론>과 <대지도론>은 한역만이 있어서 용수의 저작임이 의심되고 있다.


(4) 중기 중관파

용수 이후 5세기에 이르기까지 중관파에 대해선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중관파가 명확한 체계를 갖춘 것은 불호(佛護) 이후이다. <중론>의 주석가는 후기 중관파의 문헌과 티벳의 전승에서 8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현존하는 주석서로는 무외(無外, Akutobhaya)의 주석, 청목(靑目, Pingala)의 주석, 무착(無着)의 <순중론(順中論)>, 불호(佛護, Buddhapalita)의 주석, 청변의 <반야등론석(般若燈論釋)>, 안혜(安慧, Sthiramati)의 <대승중관석론(大乘中觀釋論)>, 월칭(月稱, Candrakirti)의 <명구론(明句論)>이 있다.

 

6세기 이후 융성한 중관파의 문헌은 중국에 별로 소개되지 않고 티벳에 전승되었다. 티벳의 전승에 의하면 중관파는 최고의 진리를 논증하는 방법의 차이로 인해 두 파로 나뉜다. 불호는 공의 논증을 귀류논법으로 하려고 했다. 이에 대해 청변은 <반야등론석>에서 귀류논법을 배척하고 인명(因明)의 추론형식에 따른 논증법으로 공을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후 월칭은 청변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불호를 옹호하게 된다. 이러한 논쟁을 겪으면서 중관파는 불호, 월칭 계통의 귀류논증파(歸謬論證派, Prasanghika)와 청변 계통의 자립논증파(自立論證派, Svatantrika)로 나뉘었다.

 

귀류논법은 상대방의 주장에 과실이 있음을 지적하여 그 주장을 파척하는 논법이다. 즉 입론자가 어떤 명제의 참을 주장하려고 할 때 상대방이 이에 대해 반대한다면, 상대방의 의향에 덧붙여 그 명제에 부정을 가정하고, 이 가정된 명제를 전제로 하여 도출된 결론이 불합리하거나 오류임을 밝힘으로 입론자의 주장이 참임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상대방의 주장에 과실이 있음을 지적하면 결국 상대방은 어떤 입언도 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공(空)을 논증하려고 하는 것이 귀류논증파의 방법이다. 귀류논증파는 스스로 주장을 세우지 않는다.

 

이에 대해 청변은 귀류논증은 논증법으로 불확실하다고 하여 이를 배척하였다. 즉 불호는 귀류논법을 써서 상대방의 입론을 파척했지만 그것은 단지 파척한 것일 뿐 적극적으로 공사상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 때문에 청변은 공(空)을 나타내는데는 귀류논증으로는 불충분하며 독립된 추론으로 공을 논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청변은 진나(陳那)의 추론방식에 따라 주장명제, 이유명제, 실례명제의 형식을 갖춘 논증식을 받아들여 논증하려고 했다. 이처럼 청변은 논리를 중요시했지만 공성 자체는 논리를 초월해 있으며, 공성은 논리적 사고가 미치지 못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승의(勝義)의 입장에서 논리학을 부정하면서도 세속의 범위 내에서는 공성을 논리로 증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청변의 시도에도 문제점은 있다. 추론형식에 따를 때 이유개념과 실례는 주장자와 반대자가 모두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반대자는 아직 최고의 진리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이유개념 및 실례는 세속의 지식을 채용해야 한다. 이에 대해 주장명제는 최고의 진리인 승의제(勝義諦)를 표현한다. 이처럼 지식의 내용에 세속제와 승의제의 차이가 있으므로 청변은 주장명제에서 󰡒승의제에서는 ~󰡓이라는 한정사를 붙인다. 그러나 이는 차원이 다른 두 가지 진리를 설정하는 것이므로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된다.


(5) 후기 중관파

 중기 중관파는 유식사상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배척하는 입장이 강하였다. 그러나 점차 중관파 가운데 유식사상이 도입되고, 중관파의 입장에서 유식사상과의 융합이 시도되게 된다. 이는 적호(寂護, Santaraksita)와 그의 제자 연화계(蓮華戒)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들을 유가행중관파(瑜伽行中觀派)라고 불렀다.

 

8세기의 대표적인 학자인 적호에게는 <진리강요(眞理綱要)>, <중관장엄론> 등의 많은 저작이 있다. <진리강요>는 중관파의 입장에서 인도의 여러 철학, 불교 안의 여러 학파와 학설을 광범위하게 비판한 것으로, 당시의 사상계의 상황을 전해준다. <중관장엄론>에서는 대표적인 불교학설을 설일체유부, 경량부, 유식파, 중관파의 네 단계로 나누면서 순차적으로 뒤의 학설은 앞의 학설을 넘어선다고 하며, 최고의 진리인 중관파에 들어가는 전제로서 다른 학파를 인정한다. 이런 입장은 다른 학파에 대해 철저히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던 이전의 중관파와는 다르다. 적호는 청변의 자립논증파 계통을 계승하며, 법칭의 논리학과 인식론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 유식설에 대해서는 유상유식(有相唯識)보다 무상유식(無相唯識)을 높이 평가하며, 무상유식의 입장에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적호는 만년에 티벳에 초빙되어 티벳불교의 기초를 확립했다. 그의 제자인 연화계도 티벳으로 들어가 중국의 선승 마하연(摩訶衍)과 점오와 돈오에 관해 논쟁을 벌인 일은 유명하다.

 

연화계에게는 적호의 저작에 대한 주석 외에 <수습차제(修習次第)> 등의 저작이 있다. <수습차제>는 보리심을 일으키고 난 후 성불하기까지의 수행순서를 밝힌 것이며, 발보리심, 반야와 방편, 문사수(聞思修)의 삼혜(三慧), 지관(止觀), 번뇌 등을 해설하고 있다. 그 후 중관파는 10세기 경 프라즈냐까라마띠, 라뜨나까라샨띠 등이 배출되어 활약하였다.

 

중기 중관파는 주로 용수의 저작인 <중론>을 주석하고 이를 논증식으로 체계화하려고 했으며, 유식사상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에 비해 후기 중관파는 용수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지만 법칭의 지식론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자립논증파에 속하며, 유가행파와 대결하기보다는 자신들의 학설에 경량부나 유가행파의 사상을 흡수하려고 하였다. 후기 중관파는 종합적인 학파로 발전되어갔다.


유식

(1) 유식사상의 흥기

유식사상에서는 자기의 밑바닥에 아뢰야식을 세워 그 식으로부터 자기와 존재하는 세계의 일체가 변현(變現)한다고 설하고 있다. 이것은 식에 따라 자기를 실체시하는 것으로서 제법무아라는 불교 본래의 입장을 상실한 것이다라는 이해가 제법 널리 퍼져있는 것이라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이해는 후기 유식사상의 입장에서 본다면 반드시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와 같이 이해되어진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지만, 초기의 유식사상은 이러한 것과는 거의 동떨어진 깊은 사상이었다고 짐작하고 있다.

 

유가행파는 유식사상을 발전시킨 사람들의 학파로서, 공관을 설한 중관파와 후대의 인도 대승불교의 두 유파를 형성하였다. 유가행(瑜伽行)이란 요가의 실천을 의미하지만 원어인 '요가짜리(yogacara)에는 '유행을 하는 사람', '요가의 스승'이라는 의미도 있다. 현장은 이것을 '유가사(瑜伽師)'라 번역하였다. 이 유가사들에 의해 유식사상이 발생하였다.

 

유가행파의 학설은 중국이나 일본의 법상종(法相宗)에 해당된다. '법상'이라는 것은 법 즉 부처님 가르침의 형태라는 뜻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조직한 학문이다. 그러나 유식학에서는 대승적인 해석을 부여하여 구사론과는 다른 전개 방식을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2) 유식사상의 발달

굽타왕조시대에 형성된 유가행파(瑜伽行派)는 <해심밀경(解心密經)>이나 <대승아비달마경(大乘阿毘達摩經)>의 사상을 이어받아 조직된 학파이다. 이들은 요가의 실천을 통해서 유식(唯識)의 체험을 심화하고, 용수에 의해 체계화된 공사상을 바탕으로 이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이론을 전개했다. 유가행파는 중관파와 더불어 대승불교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

 

이 유가행파의 시조는 미륵(彌勒, Maitreya)이며, 그 후 무착(無着, Asanga)과 세친(世親, Vasubandhu)이 유식설을 체계화시켰다. 유식파의 개조인 미륵 논사의 역사적 실재성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무착이 미륵보살을 만나 유가행(瑜伽行)의 깊은 뜻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는 전설에 대한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전설은 중국과 티벳에도 전해졌으며 무착이 미륵보살에게서 받은 가르침을 기록한 것이라고 하는 논(論)이 중국과 티벳에 각각 5부가 있다. 이 양자의 전승이 일치하지 않는데 이를 종합하면 일곱 가지가 된다.

 

미륵의 저작으로는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대승장엄경론송(大乘莊嚴經論頌)>, <변중변론송(變中邊論頌)>, <금강반야경론송(金剛般若經論頌)>, <현관장엄론송(現觀莊嚴論頌)>, <법법성분별론(法法性分別論頌)>, <구경일승보성론(究境一乘寶性論)>이 있다.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은 유가행파의 기본서로서 본지분(本地分), 섭결택분(攝決擇分), 섭석분(攝釋分), 섭이문분(攝異門分), 섭사분(攝事分)의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본지분(本地分)에서는 요가 행자가 수행해야 할 17개의 명상단계를 성명하고 있고, 섭결택분(攝決擇分)에서는 아뢰야식의 존재를 증명하고 그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유가사지론>을 제외한 나머지 저서는 모두 간결한 시구로써 내용을 설명한 것이다. <구경일승보성론(究境一乘寶性論)>은 티벳에서는 시구의 부분이 미륵의 교설이며, 산문 주석은 무착의 저작이라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전체가 견혜(堅慧)의 저작이라고 한다. <구경일승보성론>의 저자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미륵의 뒤를 이어 유식사상을 크게 발전시킨 사람은 무착과 세친이다. 무착은 북인도 간다라 지방의 푸루샤푸라 출신으로 처음에는 소승불교로 출가했다가 나중에 대승불교로 전향하여 미륵의 가르침을 받고 이를 발전시켰다고 한다. 무착의 저서로는 <섭대승론(攝大乘論)>,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현양성교론송(顯揚聖敎論)>, <순중론(順中論)>, <육문교수습정론송(六門敎授習定論)>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섭대승론(攝大乘論)>으로, 여기서는 대승불교의 특성을 10항목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논하고 있다. 10항목의 배열은 현실세계로부터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는 단계를 나타내고 있다. 소지의분(所知依分)에서는 이전의 학설을 더욱 발전시켜 아뢰야식에 대해 논하고 있고, 소지상분(所知相分)에서는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삼성설(三性說)을 논하고 있다.

 

세친은 대략 4 ~ 5세기 인물로 추정되는데, 무착의 동생으로 처음에는 소승교단에 출가하여 <구사론>을 저술하였지만 형인 무착의 영향을 받아 대승으로 전향하였다고 한다. 세친은 미륵과 무착의 대부분 저서들에 주석을 썼으며, 여러 대승경전의 해설서도 썼다. 유식설에 관련된 저작으로는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 <대승성업론(大乘成業論)>, <삼자성게(三自性偈)>, <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明門論)>,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등이 있다. 세친의 주요 저작은 <유식삼십송>과 <유식이십론>이다.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은 <유가사지론>, <해심밀경>, <대승장엄경론>, <변중변론> 등을 바탕으로 해서 유식설의 요점을 30개의 시구로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이후 유식 사상가들은 <유식삼십송>에 대한 주석서를 써서 그들의 사상을 전개해 나갔다. 대표적인 주석으로는 안혜(安慧)의 주석과 호법(護法)의 주석인 <성유식론(成唯識論)>이 있다. <유식삼십송>은 30개의 시구로 이루어진 것으로, 세친은 여기서 식(識)의 전변(轉變)이라는 관념을 도입하여 아뢰야식, 말나식(末那識), 전육식(前六識) 등 8식에 의해 현상 세계가 식의 현현(顯現)임을 설하고 있다.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은 약 20개의 시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에서 세친은 소승불교를 비롯한 일반의 사상을 비판하여 󰡐오직 식(識)뿐이며 외경(外境)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무착과 세친에 의해 대성된 유가행파는 하나의 학파로 계속 발전해갔다. 이후 연구는 주로 기본적인 경론에 대한 주석작업으로 이어졌다. 현장은 세친의 <유식삼십송>을 주석한 사람으로 십대(十大) 논사를 거론하고 있다. 이들은 호법(護法), 덕혜(德慧), 안혜(安慧), 친승, 난타(難陀), 정월(淨月), 화변(火變), 승우, 승자, 지월(智月)이다. 이 가운데 안혜와 호법의 주석만이 남아있다. 다른 주석들은 호법의 주석 가운데 단편적으로 인용되어 있다.

 

세친 이후 유가행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진나(陳那)를 들 수 있다. 진나는 480 ~ 540년 경의 인물로 주된 저작은 인명(因明:논리학)에 관한 것으로 <집량론(集量論)>이 있으며, 유식에 관계된 것으로는 <관소연론(觀所緣論)>, <취인가설론(取因假說論)> 등이 있다. 논리학은 인도의 모든 종교와 철학에 공통된 학문으로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파를 니야야학파라고 한다. 니야야는 자기의 주장을 상대방으로 하여금 승인하게 하기 위한 변론이다. 불교에서는 논리학을 인명(因明)이라고 하는데, 인(因)에 관한 명(明)이라는 뜻이다. 이전의 논리학에서는 지식을 얻기 위한 수단인 인식근거(量)에 현량(現量:직접 지각), 비량(比量:추론), 비유량(比喩量:유추), 성언량(聖言量:성인의 말)을 제시하였다. 이에 대해 진나는 현량(現量)과 비량(比量) 만을 인정하고, 그 외의 근거는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로 환원될 수 있다고 간주하였다. 진나는 추론식을 종전의 오분작법(五分作法)에서 삼지작법(三支作法)으로 개량하였다. 오분작법(五分作法)은 종(宗:주장), 인(因:이유), 유(喩:실례), 합(合:적용), 결(結:귀결)로 구성되어 있다. 삼지작법(三支作法)은 종(宗), 인(因), 유(喩)로 구성된 것으로 유(喩)에는 동유(同喩)와 이유(異喩)가 있다.

 

진나 이후 인도의 모든 학파에서는 논리학이 중시되었으며, 지식을 얻는 방법으로 이를 사용하였다. 진나의 논리학은 법칭(法稱)에게로 이어져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다. 8세기 이후 중관파 논서에서는 진나와 법칭 계통의 유식설을 유상유식(有相唯識)이라고 하여, 이를 무착 이래의 전통적인 학설인 무상유식(無相唯識)과 구별하고 있다. 유상유식(有相唯識)은 마음 안의 대상의 형상과 이를 지향하는 인식작용의 대응성, 즉 능취(能取)와 소취(所取)의 대응성에서 인식이 성립한다고 한다. 그리고 직접 지각의 내용으로 파악되는 사물의 형상에 사유가 이와 합치하는 판단을 내릴 때 정확한 인식이 성립된다고 한다. 이에 대해 무상유식(無相唯識)은 대상의 형상을 표상함과 이를 지향함, 즉 소취(所取)와 능취(能取)의 작용 자체는 허망한 것이기 때문에 분별은 미혹한 것이며 진리는 직관에 의해 획득된다고 보았다. 대체로 유상유식(有相唯識)은 식(識)의 실유(實有)를 강조함에 대해 무상유식(無相唯識)은 식(識)의 무(無)를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3) 팔식의 구조

유식불교에서는 마음을 심(心), 의(意), 식(識)으로 부른다. 이러한 용례는 이미 초기불교에서도 발견된다. <아함경>에서는 인간의 정신 현상을 심(心), 의(意), 식(識)으로 표현하고 있다. 심(心), 의(意), 식(識)의 체성(體性)은 염오성(染汚性)이라고 보았으며, 심의식(心意識)은 무상(無常)한 것이라고 여겼다. 초기 경전에서는 각각의 개별적인 심리작용은 없었으며, 생각하고 사량하고 요별하는 심리작용을 총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유식불교에서는 마음을 주체적 측면과 작용적 측면으로 파악하고, 주체적 측면을 심(心), 심법(心法), 심왕(心王) 등으로 부르고 작용적 측면을 심소유법(心所有法), 심소법(心所法) 등으로 부른다. 이러한 분류가 처음으로 시도된 것은 부파불교에서부터이다. 부파불교에서는 인간의 정신현상을 심왕(心王)과 심소(心所)로 분류하였는데, 심왕(心王)은 마음의 주체로서 인식주관이며, 심소(心所)는 개별적인 심리작용이다. 심왕(心王)이 바로 심의식(心意識)이며 이는 육식(六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점차 마음의 작용을 구분하면서 심(心), 의(意), 식(識)의 구분을 시도하고 있다.

 

<대비바사론> 제72권에서는 심의식(心意識)의 무차별설(無差別說)과 차별설(差別說)을 같이 설하고 있다. 심의식(心意識)의 무차별설은 명칭의 차이만 있을 뿐 다같이 정신의 주체를 가리키며 체(體)가 동일하다는 것으로 이는 설일체유부의 견해이다. 심의식(心意識)의 차별설은 명칭과 교설의 시설, 의미, 업 등에서 차이가 있지만 체(體)는 동일하다고 보는 것이다. 세친은 <구사론>에서 심(心)은 집기(集起)의 의미가 있으며, 의(意)는 사량(思量)의 의미가 있으며, 식(識)은 요별(了別)의 의미가 있다고 설했으며 이는 정신의 주체이며 작용만 다를 뿐 체(體)는 하나라고 설하였다.

 

그러나 점차 유식설이 발달해가면서 유가행파의 유가사들은 선정 중에 심층적인 식의 흐름과 기능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종래 부파불교시대부터 탐구되던 두 가지 문제인 윤회의 주체, 번뇌와 아집의 주체 및 의근(意根)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윤회의 주체는 아뢰야식(阿賴耶識), 번뇌와 아집의 주체는 말나식(末那識)이라는 식체(識體)를 설정하였다. 그리하여 종래의 육식설(六識說)에다 아뢰야식(阿賴耶識)과 말나식(末那識)을 결합하여 팔식(八識)을 구성하였다.

 

팔식(八識) 가운데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은 묶어서 전오식(前五識)이라고 하는데 이 식들은 각각의 감각기관에 의지해서 외부대상을 요별하고 분별한다. 즉 안식(眼識)은 색경(色境)을, 이식(耳識)은 성경(聲境)을, 비식(鼻識)은 설경(舌境)을, 설식(舌識)은 미경(味境)을, 신식(身識)은 촉경(觸境)을 요별한다.

 

제6 의식(意識)은 의근(意根)에 의지하여 인식작용을 일으키는데, 전오식(前五識)의 인식내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기억하고 회상하고 추리한다. 이 의식은 전오식(前五識)으로는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없는 것이 아니다. 의식이 일어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첫번째는 전오식(前五識)과 함께 일어나서 같은 대상을 인식하거나 아니면 전오식(前五識)과 함께 일어났지만 의식이 단독으로 인식하는 경우이고[五俱意識], 두번째는 꿈을 꾸거나 망상, 공상 및 선정(禪定)에 들 때와 같이 의식이 독단적으로 일어나는 경우[五不俱意識]를 말한다.

 

제7 말나식(末那識)은 자아의식으로 제6식보다 사량분별작용이 강하고 집요하다. 즉 제6의식 깊숙한 곳에 잠재하는 이기성과 자아에 집착하는 마음이 말나식인 것이다. 말나는 인도의 마나스(manas)의 음사어로 󰡐이것저것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말나식은 사량식(思量識)이라고도 한다.

 

또 말나식은 제8 아뢰야식을 일으킨 근본 원인으로 상정된다. 우리가 어떤 의도적인 행위를 하거나 아니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끊임없이 아치(我痴),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애(我愛)의 네 가지 번뇌와 항상 같이하면서 업을 일으킬 때 이들에 의한 인상이나 여운 등을 그대로 흡수하여 저장하는 장소로서 아뢰야식이 활용되는데 이렇게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식은 제6식보다는 깊고 제8식보다는 얕은 식이 상정됨으로써 가능하다. 이러한 식을 제7말나식이라고 하며, 이 식에 의하여 업을 지어서 중생들이 결과적으로 세세생생 윤회하게 되는 것이다.

 

아뢰야(阿賴耶)는 인도의 아알라야(alaya)란 말을 그대로 음사한 것이다. 아라야란 󰡐밑층에 깔려있는, 파묻히다󰡑라는 말을 명사화한 것이며, 󰡐감추다, 간직하다󰡑라는 뜻이다.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은 이렇게 모든 업의 산물들을 스스로 저장하는 능장(能藏)으로서의 의미도 갖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모든 세력들을 소장(所藏)할 장소로서의 처소로도 제공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 아뢰야식은 앞에서와 같이 항상 제7 말나식의 집착과 아집 등에 의하여 유린당하는 입장에 서 있으므로 이 경우 제8 아뢰야식은 집장(執藏)의 뜻이 강하다. 왜냐하면 아뢰야식의 본래 의미는 유루법(有漏法)이 현행(現行)하는 사이, 곧 아집 등이 활동하는 동안만 존재하는 것이지 아집 등이 없는 성인위에 오르면 이 식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4) 식의 전변

유식설에서는 마음의 주체적인 측면을 팔식(八識)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삼능변(三能變)으로 설명하기로 한다. 팔식(八識)은 인간의 마음이 표층에서 심층으로 향하는데 여덟 가지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삼능변(三能變)은 마음이 심층에서 표층으로 능동적으로 대상에 작용하는 면을 말한 것으로 이것이 식전변설(識轉變說)이다.

 

<중변분별론>에서 식은 대상으로서, 감관으로서, 자아로서, 육식(六識)으로 현현(顯現)한다고 설해져 있다. 즉 식의 현현은 설해지지만 아직 식의 전변을 설하지는 않는다. 식의 전변(轉變)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한 것은 세친의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이다. 전변(轉變)의 원어는 빠리나라(parinama)로 문자 그대로 변화하는 것, 달라지는 것이다. 전변이라는 말은 인도철학의 한 학파인 상키야 철학에서 근본 물질에서 시작하는 우주의 전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세친은 전변을 시간적 변화로 파악하하고 있는데, 전변에는 잠재심으로서의 아뢰야식이 형태를 바꾸어 표면심으로 나타나는 변화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유식설에 있어 전변(轉變)은 인전변(因轉變)과 과전변(果轉變)으로 나뉜다. 과전변(果轉變)에는 이숙(異熟)전변, 사량(思量)전변, 요별경(了別境)전변이 있다. 인전변(因轉變)이란 종자(種子)가 현행(現行)으로 전변하는 힘을 갖는 것을 말한다. 그 종자는 현행의 훈습에 의해 아뢰야식에 저장된 것이다. 즉 선(善)의 현행은 선의 종자를, 악(惡)의 현행은 악의 종자를, 무기(無記)의 현행은 무기의 종자를 아뢰야식에 저장한다. 이 인(因)과 같은 성질의 종자를 등류습기(等類習起)라고 하며 명언종자(名言種子)라고도 한다. 현행의 심리경험은 명언(名言)의 상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이밖에 선악의 행위는 업종자(業種子)를 아뢰야식에 훈습하고, 이 업종자(業種子)에 의해 업의 과보가 생긴다. 이 아뢰야식 가운데 명언종자(名言種子)와 업종자(業種子)가 전변하는 힘을 인전변(因轉變)이라고 하는 것이다.

 

과전변(果轉變)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전생의 업의 과보로서 아뢰야식의 중동분(衆同分) 가운데 생기는 것이다. 이것은 특정한 개인의 생존이 선택되는 것, 아뢰야식의 모태를 빌어 특정한 개인의 생존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총보(總報)의 과체(果體)로서의 아뢰야식이 성립하는 것으로서 전생의 업의 과보에 의해 인간으로 태어날 때 모태에 의탁하는 찰나에 인간의 아뢰야식이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이 개인적 생존의 아뢰야식 자체의 종자에서 현행의 8식이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숙전변(異熟轉變), 사량전변(思量轉變), 요별경전변(了別境轉變)의 세 가지 전변이 있다.

 

이숙전변(異熟轉變)은 아뢰야식으로, 자기의 모든 행위를 훈습하여 간직하는 것이다. 아뢰야식은 선(善), 악(惡), 무기(無記)의 모든 종자를 받아들인다. 그 때문에 총보(總報)의 과체(果體)로서의 아뢰야식은 이숙(異熟)이라고 말해진다. 이숙(異熟)이란 과거 업의 결과로 생긴 것이지만 그 자신은 선도 악도 아닌 것은 의미한다. 이 아뢰야식도 식인 점에서 인식작용을 하고 있지만 식의 활동이 미약하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다. 식의 활동을 하고 있는 점에서 현행(現行) 뢰야이며, 이에 대해 종자의 집합체인 점에서 종자(種子) 뢰야이다. 현행 뢰야와 종자 뢰야는 아뢰야식의 두 측면이다. 아뢰야식은 찰나멸하지만 그 가운데 성격이나 기억 등은 종자로 보존되어 개인의 인격을 형성한다. 즉 찰나멸을 되풀이하면서 변화해가는 것이다. 아뢰야식을 흔히 고정된 실체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아뢰야식은 인격의 주체로서 자아와 같지만 고정적인 실체는 아니다. 아뢰야식의 전변을 이숙전변(異熟轉變)이라고 한 것은 윤회의 주체로서 아뢰야식은 전생의 업의 결과로서 성립한 것이며, 이숙과(異熟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명언종자가 보존되어 있고, 그들도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뢰야식은 선도 악도 아닌 중성의 상태[無記]인 것이다. 이러한 활동을 밝힌 것이 이숙전변이다.

 

사량전변(思量轉變)이란 말나식(末那識)을 말하며, 사량(思量)을 본성으로 하고 있다. 말나식은 제6식의 배후에 있으며, 사량에 의해 끊임없이 자아의식을 구성하고 있는 식이다. 이것은 염오의(染五意)라고도 불리며, 자아에 대한 집착으로 더러워져있는 식이다. 말나식은 아뢰야식을 근거로 하여 생기며, 아뢰야식 가운데 스스로의 종자가 전변하여 성립한 식이다. 말나식은 아뢰야식을 자기의 자아로 잘못 인식하고 자아의식을 일으킨다. 말나식은 제6식의 배후에 있는 자아의식이지만 제6의식이 일으키는 자아의식처럼 명료하지는 않다. 말나식은 제6의식이 활동하지 않을 때에도 활동하고 있으며, 기절했을 때도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따라서 이 자아의식을 저절로 일어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요별(了別)이란 판단 즉 인식활동, 식의 작용을 말한다. 아뢰야식이건 말나식이건 식은 요별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상을 판단하는 전6식의 작용은 특히 미세하지도 않고 대략적이기 때문에 전6식의 작용을 요별경전변(了別境轉變)이라고 한다. 전6식이란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의 전5식과 제6의식(意識)이다. 전5식은 감각적 인식이며, 그 소연(所緣)은 각각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의 오경(五境)이다. 제6의식에는 감각적 인식과 동시에 활동하고 이 결과를 인식하는 것과 의식만이 단독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있다. 전5식은 감각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선악의 구별이 없다. 하지만 그들은 의식과 동시에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물들어 5식도 선(善), 악(惡), 무기성(無記性)이 된다고 한다. 의식은 외계의 사물을 실체적으로 구상하여 법집(法執)을 일으킨다.


(5) 삼성설

유식사상은 용수의 공사상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이런 공사상을 좀더 구체적으로 해명하여 인식과 존재와 깨달음의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 삼성설(三性說)이다. 삼성(三性)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의타기성(依他起性), 원성실성(圓成實性)이다. 변계소집성은 집착과 미망의 세계이며, 의타기성은 서로 의지하는 연기의 세계이며, 원성실성은 깨달음의 세계이다.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은 분별성(分別性)이라고도 하며, 범부의 인식내용이 허망함을 뜻한다. 범부가 인식하는 것은 성인이 인식하는 것과 다른 것으로, 현상세계와 자아를 집착하여 이를 고정적 실체로 인식하고 있다. 즉 이러한 범부의 인식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허망한 것이다. 허망분별에 의해 거짓으로 분별된 인식이기 때문에 변계소집성인 것이다.

 

의타기성(依他起性)은 의타성(依他性)이라고도 한다. 의타기(依他起)란 다른 것에 의존해 생긴다는 뜻으로 타(他)란 연(緣)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의타기(依他起)란 연기(緣起)와 같은 것이다. 식(識)은 수많은 연(緣)이 모여서 성립한 것으로 독자적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며, 연(緣)이 흩어지면 식(識)도 사라지게 된다. 식은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것이다. 즉 의타기성은 여러 가지 조건이 서로 화합됨에 따라 존재하는 것을 말하며, 이것이 우리의 현실세계이며, 모든 존재의 보편적인 모습인 것이다.

 

원성실성(圓成實性)은 진실성(眞實性) 이라고도 하며, 의타기성의 식(識)으로부터 허망한 분별이 없어진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의타기성 이외에 특별한 다른 세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현상세계를 있는 그대로 아는 것으로 의타기성의 진실을 각성하는 것이다. 즉 의타기성의 세계를 의타기성의 세계라고 그대로 자각하는 것이다. 실체를 그대로 자각하는 것, 존재의 진상을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원성실성이다. 즉 원성실성과 의타기성은 불일불이(不一不異)의 관계이다. 의타기성에서 변계소집성인 주체가 원성실성의 깨달음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원성실성의 경지에서도 의타기성의 상(相) 외에는 없기 때문에 서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미망에 싸여있는 것은 변계소집성이며, 자기를 깨닫는 것은 원성실성이다.


(6) 유식의 수행

유식설에서는 미혹과 허망분별로 가득찬 세계를 자각하고 이를 전환하여 무분별의 세계인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설하고 있다. 즉 윤회의 세계에서 전환하면 깨달음의 세계가 드러나는데 이를 전식득지(轉識得智)라고 한다.

 

유식설에서는 유가행의 수습단계가 발전하여 오위설(五位說)로 정착되었지만 이미 부파불교에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설해지고 있었다. 오위(五位)는 유식관의 진전을 나눈 것으로, 자량위(資糧位), 가행위(加行位), 통달위(通達位), 수습위(修習位), 구경위(究竟位)이다.

 

첫째 자량위(資糧位)는 복덕과 지혜의 두 가지 자량을 축적하는 수행의 준비단계라는 의미이다. 즉 친구의 권유나 자기의 의지로써 유식의 교리를 배우고 그것이 진리임을 믿고 이해할 수 있지만 아직 유식(唯識)이 자기 것으로 체험되지 않은 단계이다. 따라서 아집, 법집의 번뇌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은 단계이다.

 

둘째 가행위(加行位)는 이미 직접적으로 유식(唯識)의 수행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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